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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하늘꿈교회 &amp;gt; 설교말씀 &amp;gt; 특별집회</title>
<link>http://skydream.or.kr/g5/sermon02</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특별집회 (2026-04-02 07:03:28)</description>

<item>
<title>눅 22:14-23, 왜 유다를 내보내지 않으셨는가?</title>
<link>http://skydream.or.kr/g5/sermon02/4</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max-width:800px;margin:0 auto;background-color:#1a1c2c;color:#cccccc;font-family:Pretendard, 'Malgun Gothic', sans-serif;line-height:1.9em;letter-spacing:-0.03em;padding:40px 20px;">
<p style="color:rgb(212,175,55);font-size:1.1em;font-weight:600;margin-bottom:10px;text-align:center;">2026년 고난주간 새벽기도 4</p>
<h1 style="color:rgb(255,255,255);font-size:2.2em;line-height:1.3em;margin-bottom:20px;text-align:center;">왜 유다를 내보내지 않으셨는가?</h1>
<p style="color:#d4af37;font-size:1.05em;border-top:1px solid #30344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15px 0;min-width:250px;">성경본문: 누가복음 22:14-23<br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p>
<div style="font-size:0.9em;color:rgb(136,136,136);margin-bottom:30px;text-align:center;">설교: 김대성 목사 | 일시: 2026년 4월 2일(목)</div>
<h2 style="color:#ffffff;font-size:1.5em;line-height:1.5em;margin:0;">"이 언약은 자격 있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격 없는 자를 위해 예수님이 직접 자격을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h2>
<h3 style="color:#fffff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bottom:10px;margin-top:40px;">[본문]</h3>
<p style="margin-bottom:25px;">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br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br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br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br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br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br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br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br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br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p>
<p style="margin-bottom:25px;"> </p>
<h3 style="color:#fffff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bottom:10px;margin-top:40px;">[말씀요약]</h3>
<p style="margin-bottom:20px;">오늘은 고난주간 목요일입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오늘 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피 같은 땀을 흘리며 기도하실 것입니다. 그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누가는 그 장면을 이렇게 전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color:#ffffff;font-weight:500;">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4-15)</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은 이 식탁을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드시며 선언하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color:#ffffff;font-weight:500;">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여기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왜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자가 이 자리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지금 이 식탁에 앉아 있는 자 중 하나가 자신을 팔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미리 내보내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왜 굳이 새 언약을 선포하는 그 자리에, 배신자를 함께 앉혀 두셨습니까?</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예수님의 행동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예수님은 배신자 유다를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떡을 나누셨고, 잔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새 언약을 선포하신 뒤에 말씀하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color:#ffffff;font-weight:500;">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누가복음 22:21)</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이 식탁은 완전한 자들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사흘 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베드로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color:#ffffff;font-weight:500;">베드로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누가복음 22:34)</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겟세마네에서 모두 도망갈 제자들도 그 식탁에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내 몸과 내 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언약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color:#ffffff;font-weight:500;">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이 언약은 자격 있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격 없는 자를 위해 예수님이 직접 자격을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이 새벽, 이 식탁 앞에서 우리에게 질문이 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나는 이 식탁에 앉을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p>
<p style="margin-bottom:40px;">배신자도 앉아 있던 그 식탁이, 바로 우리를 위한 식탁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가슴에 품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p>
<div style="border:2px solid #d4af37;padding:25px;margin-bottom:40px;text-align:center;">
<p style="color:#d4af37;font-weight:bold;font-size:1.2em;margin:0;"><span style="font-size:18pt;">복음의 식탁은 자격 있는 자를 위한 보상이 아니라,</span><br /><span style="font-size:18pt;">자격 없는 죄인을 위해 주님이 친히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의 초대입니다.</span></p>
</div>
<h3 style="color:#ffffff;margin-top:0;margin-bottom:15px;">기도</h3>
<p style="font-style:italic;color:#bbbbbb;margin-bottom:0;">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이 식탁에 앉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배신한 유다처럼, 부인한 베드로처럼, 도망친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식탁에 우리를 앉히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붓는 내 피라 하시며, 우리를 위해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br /><br />주님, 이 은혜 앞에 말이 없습니다. 이 고난주간, 우리가 받은 이 초대의 무게를 가슴 깊이 새기게 하소서. 내일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이 새벽 기도의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
</div>]]></description>
<dc:creator>섬김이</dc:creator>
<dc:date>2026-04-02T07:03:28+09:00</dc:date>
</item>


<item>
<title>막 14:1-11, 영원히 기억되는 헌신</title>
<link>http://skydream.or.kr/g5/sermon02/3</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max-width:800px;margin:0 auto;background-color:#1a1c2c;color:#cccccc;font-family:Pretendard, 'Malgun Gothic', sans-serif;line-height:1.9em;letter-spacing:-0.03em;padding:40px 20px;">
<p style="color:rgb(212,175,55);font-size:1.1em;font-weight:600;margin-bottom:10px;text-align:center;">2026 고난주간 새벽기도회</p>
<h1 style="color:rgb(255,255,255);font-size:2.2em;line-height:1.3em;margin-bottom:20px;text-align:center;">영원히 기억되는 헌신</h1>
<p style="color:#d4af37;font-size:1.05em;border-top:1px solid #30344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15px 0;min-width:250px;">성경본문: 마가복음 14:1-11<br />찬송가 511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p>
<div style="text-align:right;font-size:0.9em;color:#888888;margin-bottom:30px;">설교: 김대성 목사 | 일시: 2026년 4월 1일(수)</div>
<h2 style="color:#ffffff;font-size:1.5em;line-height:1.5em;margin:0;">"계산이 아니라 사랑, 효율이 아니라 예배,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신 헌신이었습니다."</h2>
<h3 style="color:#fffff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bottom:10px;margin-top:40px;">[본문]</h3>
<p style="margin-bottom:25px;">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어떻게 속여 잡아 죽일까 하고 방책을 구하며<br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br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br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느냐<br />5 이 향유를 비싸게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br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히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br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br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br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br />10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br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p>
<h3 style="color:#fffff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bottom:10px;margin-top:40px;">[말씀요약]</h3>
<p style="margin-bottom:20px;">오늘 본문은 사흘 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그 직전의 이야기입니다.<br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잡아 죽일까 모의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어떻게 속여 잡아 죽일까 하고 방책을 구하니 이는 그들이 무리를 두려워함이러라 (마가복음 14:1)</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조용히, 은밀히, 계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바로 그 시간,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가복음 14:3)</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순전한 나드 향유, 당시 가격으로 300데나리온이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노동자 한 명의 일 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것을 이 여인은 한 번에 다 부어버렸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여기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 여인을 책망했습니까?<br />그들이 틀렸습니까? 300데나리온이면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선해 보입니다. 마가는 그 반응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느냐 이 향유를 비싸게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마가복음 14:4-5)</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우리의 생각을 뒤집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히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4:6)</p>
<p style="margin-bottom:20px;">그리고 예수님은 이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마가복음 14:9)</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왜 이 행위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함께 전해져야 합니까? 예수님이 그 이유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4:8)</p>
<p style="margin-bottom:20px;">이 여인은 알고 있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예수님이 곧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이 여인은 사랑으로 알아보았습니다.<br />제자들은 그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을 쏟아붓는 것이 낭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20px;"> </p>
<p style="margin-bottom:20px;font-weight:600;color:#ffffff;">계산이 아니라 사랑, 효율이 아니라 예배,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신 헌신이었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40px;"> </p>
<p style="margin-bottom:40px;">이 새벽, 이 질문이 남습니다.<br />나는 예수님을 위해 낭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항상 계산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p>
<div style="border:2px solid #d4af37;padding:25px;margin-bottom:40px;text-align:center;">
<p style="color:#d4af37;font-weight:bold;font-size:1.2em;margin:0;">진정한 복음의 반응은 효율적인 계산이 아니라,<br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거룩한 낭비'입니다.</p>
</div>
<h3 style="color:#ffffff;margin-top:0;margin-bottom:15px;">기도</h3>
<p style="font-style:italic;color:#bbbbbb;margin-bottom:0;">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계산했습니다. 이만큼 드리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만큼 섬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효율을 따지고, 손해를 피하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br /><br />그런데 이 새벽, 한 여인의 옥합이 우리 앞에 깨어집니다. 계산 없이, 전부를 쏟아낸 그 사랑이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주소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 때, 우리의 옥합도 자연스럽게 깨어질 줄 믿습니다.<br /><br />이 고난주간,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계산이 무너지게 하소서. 그 자리에 감사와 예배가 자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
</div>]]></description>
<dc:creator>섬김이</dc:creator>
<dc:date>2026-04-01T07:05:39+09:00</dc:date>
</item>


<item>
<title>막 12:38-44, 복음을 안다면서 왜 여전히 계산하는가?</title>
<link>http://skydream.or.kr/g5/sermon02/2</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max-width:800px;margin:0 auto;padding:40px 20px;background-color:#1a1c2c;color:#cccccc;font-family:Pretendard, 'Malgun Gothic', sans-serif;line-height:1.9em;letter-spacing:-0.03em;">
<div style="text-align:center;margin-bottom:40px;">
<h1 style="color:#ffffff;font-size:28px;margin-bottom:10px;font-weight:bold;">우리는 정말 복음으로 사는가, 복음만 아는가?</h1>
<p style="color:#d4af37;font-size:16px;margin:0;">마가복음 12:38-44</p>
<p style="color:#d4af37;font-size:15px;margin-top:5px;">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p>
</div>
<div style="border-top:1px solid #30344f;padding-top:15px;text-align:right;margin-bottom:50px;">
<div style="font-size:14px;color:#888;">설교: <strong>김대성 목사</strong> | 날짜: 2026년 3월 31일 (화요일)</div>
</div>
<div style="background-color:#25283d;border-left:6px solid #d4af37;padding:30px;margin-bottom:50px;">
<p style="color:#ffffff;font-size:20px;font-weight:600;margin:0;">"서기관은 하나님을 머리로 알았고, 과부는 가슴으로 드렸습니다.</p>
<p style="color:#ffffff;font-size:20px;font-weight:600;margin:0;">종교를 버렸다 하면서 왜 계산은 버리지 못하는가?</p>
<p style="color:#ffffff;font-size:20px;font-weight:600;margin:0;">왜 은혜를 말하면서도 헌신 앞에서는 멈추는가?</p>
<p style="color:#ffffff;font-size:20px;font-weight:600;margin:0;">하나님은 금액이 아니라 '비중'을 보십니다."</p>
</div>
<div style="margin-bottom:60px;">
<h3 style="color:#fffff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bottom:10px;margin-bottom:25px;">본문</h3>
<div style="background-color:#1f2235;padding:25px;margin-bottom:40px;font-size:15px;">
<p style="margin:0 0 10px 0;">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p>
<p style="margin:0 0 10px 0;">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p>
<p style="margin:0 0 10px 0;">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p>
<p style="margin:0 0 10px 0;">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p>
<p style="margin:0 0 10px 0;">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p>
<p style="margin:0 0 10px 0;">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p>
<p style="margin:0 0 0 0;">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p>
</div>
<h3 style="color:#ffffff;border-bottom:1px solid #30344f;padding-bottom:10px;margin-bottom:25px;">말씀요약</h3>
<p>오늘 본문은 두 장면이 이어집니다.</p>
<p>첫 번째 장면, 예수님은 무리를 가르치시면서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문안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 잔치에서 상석을 즐겼습니다.</p>
<p> </p>
<p>마가는 결정적인 말을 덧붙였습니다.</p>
<p> </p>
<p style="color:#ffffff;font-weight:500;">"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마가복음 12:40)"</p>
<p> </p>
<p>두 번째 장면,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 앞에 앉으셨습니다. 부자들이 많은 돈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당시 가장 작은 동전 두 개입니다.</p>
<p> </p>
<p>여기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br />예수님은 왜 이 두 렙돈을 가장 많이 드린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부자들의 헌금이 훨씬 크지 않습니까? 실제로 성전에 쓰이는 것은 부자들의 헌금 아닙니까? 두 렙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p>
<p><br />그런데 예수님은 이 과부가 가장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p>
<p> </p>
<p>그 이유가 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p>
<p style="color:#ffffff;font-weight:500;">"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마가복음 12:44)"</p>
<p> </p>
<p>생활비 전부라는 표현, 헬라어 원문에는 <strong>βίον(비온)</strong>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삶, 생명, 살아가는 힘 전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금액을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의 전부 중 얼마를 드렸는지를 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아셨습니다.</p>
<p> </p>
<p>헌금함 앞에 모인 사람들 중 이 과부의 헌금에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보셨습니다. 바로 이 대비가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장면의 서기관들은 사람들이 다 보는 자리에서 종교를 했습니다.</p>
<p> </p>
<p>긴 옷, 높은 자리, 긴 기도.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
<p><br /><span style="color:#ffffff;">"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마가복음 12:40)"</span></p>
<p> </p>
<p>보이는 곳에서의 종교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은 과부의 두 렙돈은 예수님께서 친히 기념하셨습니다.</p>
<p> </p>
<p>이 새벽, 우리에게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br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 중에서,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이 질문을 품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p>
</div>
<div style="border:2px solid #d4af37;padding:25px;margin-bottom:50px;text-align:center;">
<p style="color:#d4af37;font-size:18px;font-weight:bold;margin:0;">과부의 두 렙돈에 담긴 전적인 헌신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 전부(βίον)를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쏟아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을 통해 이미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p>
</div>
<div style="background-color:#25283d;padding:35px;">
<h3 style="color:#ffffff;margin-top:0;margin-bottom:20px;font-size:20px;">기도</h3>
<div style="font-style:italic;color:#bbbbbb;">
<p style="margin-bottom:15px;">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사람 앞에서 했습니다. 보이는 자리에서 더 열심이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는 마음이 느슨해졌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15px;">그러나 하나님은 헌금함 앞에 앉아 과부의 두 렙돈을 보셨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보셨습니다.</p>
<p style="margin-bottom:15px;">주님, 우리의 숨겨진 헌신을 주님만 아시는 것으로 충분하게 하소서. 사람의 박수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기뻐하게 하소서.</p>
<p style="margin-bottom:0;">이 고난주간, 우리의 전부를 주님께 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십자가 앞에서 더 깊이 배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
</div>
</div>
</div>]]></description>
<dc:creator>섬김이</dc:creator>
<dc:date>2026-03-31T07:01:01+09:00</dc:date>
</item>


<item>
<title>막 11:12-19, 왜 예수님은 잎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가?</title>
<link>http://skydream.or.kr/g5/sermon02/1</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max-width:800px;margin:0 auto;padding:40px 20px;background-color:#1a1c2c;color:#cccccc;font-family:Pretendard, 'Malgun Gothic', sans-serif;line-height:1.9em;letter-spacing:-0.03em;">
<div style="text-align:center;margin-bottom:40px;">
<h1 style="color:#ffffff;font-size:1.8em;margin-bottom:15px;font-weight:bold;">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었던 이유</h1>
<p style="color:#d4af37;font-size:1.1em;margin:0;">본문: 마가복음 11:12-19</p>
<p style="color:#d4af37;font-size:1em;margin:5px 0 0 0;">찬송가 48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p>
</div>
<div style="border-top:1px solid #30344f;padding-top:15px;text-align:right;margin-bottom:50px;">
<div style="font-size:0.95em;color:#999999;"><span style="margin-right:15px;">설교: 김대성 목사</span> 2026년 3월 30일</div>
</div>
<div style="background-color:#25283d;border-left:6px solid #d4af37;padding:30px;margin-bottom:50px;">
<p style="color:#ffffff;font-size:1.3em;font-weight:600;margin:0;line-height:1.6em;">"잎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없었습니다. <br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표는 달려 있었으나 하나님을 향한 열망은 사라졌습니다."</p>
</div>
<div style="margin-bottom:60px;">
<h2 style="color:#ffffff;font-size:1.2em;border-bottom:2px solid #d4af37;padding-bottom:5px;margin-bottom:25px;">본문</h2>
<div style="background-color:rgba(255,255,255,0.03);padding:25px;">
<p style="margin:0 0 10px 0;">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p>
<p style="margin:0 0 10px 0;">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p>
<p style="margin:0 0 10px 0;">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p>
<p style="margin:0 0 10px 0;">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p>
<p style="margin:0 0 10px 0;">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p>
<p style="margin:0 0 10px 0;">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p>
<p style="margin:0 0 10px 0;">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이더라</p>
<p style="margin:0 0 0 0;">19 그리고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p>
</div>
</div>
<div style="margin-bottom:60px;">
<h2 style="color:#ffffff;font-size:1.2em;border-bottom:2px solid #d4af37;padding-bottom:5px;margin-bottom:25px;">말씀요약</h2>
<p>고난주간 첫날 아침입니다.</p>
<p>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군중은 겉옷을 길에 깔았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p>
<p>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시는 길에 한 나무 앞에 멈추셨습니다. 마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p>
<p> </p>
<div style="color:#ffffff;font-style:italic;margin:25px 0;padding-left:20px;border-left:2px solid #30344f;">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마가복음 11:13)</div>
<p> </p>
<p>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p>
<p>예수님은 왜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까?</p>
<p>단순히 배가 고프셨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감정적인 반응처럼 보입니다. 더 이상한 것은 마가가 분명히 말합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고. 제철도 아닌데 열매를 기대하셨다니,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닙니까?</p>
<p>그런데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p>
<p> </p>
<p>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잎보다 먼저 맺힙니다.</p>
<p>잎이 보인다는 것은 나에게 열매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나무는 잎으로 자신을 광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p>
<p> </p>
<p>예수님은 바로 그 나무에서 발길을 돌려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p>
<p>그리고 성전 안에서도 똑같은 장면을 보셨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미 선언하셨습니다.</p>
<p> </p>
<p> </p>
<div style="color:#ffffff;font-style:italic;margin:25px 0;padding-left:20px;border-left:2px solid #30344f;">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사야 56:7)</div>
<p> </p>
<p>그런데 예수님이 가까이 가서 보셨을 때, 성전 안은 장사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p>
<p> </p>
<div style="color:#ffffff;font-style:italic;margin:25px 0;padding-left:20px;border-left:2px solid #30344f;">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마가복음 11:15)</div>
<p> </p>
<p>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
<p> </p>
<p><strong>“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마가복음 11:17)</strong></p>
<p> </p>
<p>잎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없었습니다.</p>
<p>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표는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열망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있어 보이는 것에 속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나무든, 성전이든, 예수님은 그 안을 보셨습니다.</p>
<p> </p>
<p>이 새벽, 우리에게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p>
<p>예수님이 지금 이 기도의 자리에 오신다면 무엇을 보실까요?</p>
<p>우리에게도 잎은 있습니다. 이 새벽 일찍 일어나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난주간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까이 오실 때,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진짜 열망이 있습니까? 예수님과 연합된 삶이라는 것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잎만 무성한 삶이었다면 지금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잎만 무성한 종교적 외식을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심령과 성전을 정화하시는 참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을 의지해 오늘부터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정화 시키기 원하십니다. 지금 함께 기도하겠습니다.</p>
</div>
<div style="border:1px solid #d4af37;padding:25px;text-align:center;margin-bottom:60px;">
<p style="color:#d4af37;font-weight:bold;margin:0;font-size:1.1em;">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잎사귀만 무성한 외식의 자리를 허무시고,</p>
<p style="color:#d4af37;font-weight:bold;margin:0;font-size:1.1em;">우리를 하나님과 대면하는 진정한 기도의 집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p>
</div>
<div style="background-color:#25283d;padding:35px;">
<h2 style="color:#ffffff;font-size:1.2em;margin-top:0;margin-bottom:20px;text-align:center;">기도</h2>
<div style="font-style:italic;color:#bbbbbb;text-align:center;">
<p>하나님 아버지,</p>
<p>우리는 잎이 있는 나무처럼 신앙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예배도 드렸고, 말씀도 읽었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벽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 안에 얼마나 진짜 열망이 있었는지, 우리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p>
<p>주님, 우리의 신앙이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셨듯이, 우리의 예배를 정화하여 주소서. 우리의 기도를 정화하여 주소서.</p>
<p>이 고난주간, 주님의 고난을 따라 걸으며 우리 안에 진짜 열매가 맺히게 하소서. 이 새벽 이 자리에 나온 것처럼,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p>
<p style="margin-bottom:0;">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
</div>
</div>
</div>]]></description>
<dc:creator>섬김이</dc:creator>
<dc:date>2026-03-30T16:16:5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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