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4:25-32, 용서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복음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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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요약
용서는 당신의 '결심'이 아니라, 복음이 맺는 '열매'입니다
복음이 제안하는 뜻밖의 해결책 (에베소서 4:25-32)
설교자: 김대성 목사 | 설교일: 2026년 5월 3일
용서는 내가 쥐어짜는 결심이 아니라, 이미 받은 용서가 우리 삶에 흘러넘치는 사건입니다.
용서는 내 의지로 만들어내는 도덕적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거대한 용서가 막힘없이 흘러가게 하는 영적 통로의 회복입니다.
당신의 결심이 실패한 이유; 노력해도 용서가 안된 이유 :
분을 품지 말라, 용서하라, 거짓말 하지 마라, 도적질 하지 말라등등 이런식으로 사람의 행위를 교정하려 하거나 노력으로 성취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노력 보다 먼저 복음을 발견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이런 분께 도움이 됩니다
- 잊으려 해도 자꾸 떠오르는 사람 때문에 마음 한쪽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분
- 용서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짓눌려 오히려 깊은 신앙적 죄책감을 느끼는 분
- 반복되는 결심과 실패 속에서 "나는 사랑이 없는 사람인가"라며 무력감을 느끼는 성도
설교가 비추는 우리의 현실
- 우리는 분노를 폭발시키기보다 마음속에 '쓴 뿌리'로 남겨두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차갑게 굳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 하나님의 용서와 나의 용서를 별개의 사건으로 분리하여, 내 힘과 의지로 용서를 '제조'하려고 끊임없이 애씁니다.
- 내가 '만 달란트 빚 탕감받은 자'라는 압도적인 복음의 사실을 잊어버린 채, 당장 눈앞의 서운함과 억울함에 매몰되어 영적인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설교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
- 본문의 '같이(Kathos)'는 단순한 도덕적 모방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근거이자 동력입니다.
- 우리는 용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발원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용서가 지나가는 통로(Pipe)일 뿐입니다.
- 용서하지 못함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가'에 대한 망각에서 비롯됩니다.
- 복음은 더 강한 결단을 촉구하기보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이미 받은 용서를 '다시 듣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 설교 요약
어쩌다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잊고 지냈던 누군가의 얼굴 앞에서 손이 멈출 때가 있습니다. 화가 치미는 것은 아니지만, 가슴 한쪽이 묘하게 굳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하며 덮어두려 하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매듭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이번엔 정말 용서해보자"며 결심하지만, 그 결심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에베소서 4장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이 '마음의 굳어짐'을 '악독' 혹은 '쓴 뿌리'라고 진단합니다. 바울은 분을 품는 것이 단순히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상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영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위험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우리에게 "더 강한 의지로 용서하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본문 32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라는 구절에 있습니다. 여기서 '같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본받아 노력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너희에게 베푸신 용서가 너희 삶의 근거이자 흘러가는 물줄기가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용서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사랑이 나라는 통로를 거쳐 다른 이에게로 전달되는 유기적인 흐름입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수도꼭지를 더 세게 돌리지 않습니다. 대신 어디서 물길이 막혔는지를 확인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는 용서의 물길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큰 빚을 탕감받았는지를 잊어버린 순간, 우리 마음의 통로는 즉시 굳어버리고 아래로 흐르는 물길도 끊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는 이 원리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종이 동료의 멱살을 잡았던 이유는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방금 임금에게 받은 만 달란트의 탕감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었는지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실패는 결심의 부족이 아니라 '기억의 실패'이며 '복음을 듣지 못한 결과'입니다. 내가 용서받은 사실이 희미해지면, 타인을 향한 용서는 불가능한 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이 아닙니다. 대신 "다시 듣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도저히 갚을 수 없었던 죄의 빚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청산되었는지를 다시 들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복음 앞에 앉아 내가 받은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는 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위에서 흘러내리는 은혜의 수압이 강해질 때, 우리 마음을 막고 있던 굳은 매듭들은 비로소 밀려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용서는 억지로 쥐어짜는 도덕적 성취가 아니라, 복음에 압도된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물입니다. 사진 속 그 사람의 얼굴 앞에서 다시 가슴이 굳어진다면, 자신의 무능력을 자책하지 말고 십자가 아래로 달려가십시오. 그곳에서 "너는 이미 다 용서받았다"는 주님의 음성을 충분히 들으십시오. 그 들음이 회복될 때, 비로소 우리의 딱딱했던 가슴은 부드러운 통로가 되어 생명의 물줄기를 흘려보내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선언 | Gospel Declaration
용서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결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를 통해 흘러가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Forgiveness is not a resolution we create,
but a fruit of grace through which the forgiveness we have already received from God in Christ flows through us.
♥ 말씀 붙들고 기도하기
- 내 힘으로 용서하려고 애쓰다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내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크기를 깊이 깨닫게 하소서.
- 잊으려 해도 자꾸 굳어지는 내 마음의 매듭을 주님 앞에 내어드리오니, 십자가의 은혜가 내 메마른 심령을 적시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 매일 아침 '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받았다는 복음의 소식을 다시 들음으로, 내 삶의 모든 막힌 영적 흐름이 회복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