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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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15-21, 관계에서 다시 무너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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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요약

관계에서 다시 무너지는 이유
관계의 갈등을 푸는 복음의 비밀

설교자: 김대성목사  |  설교일: 2026년 5월 17일  |  본문: 에베소서 5장 15-21절

이미 사랑받았기에 우리는 먼저 굽힐 수 있습니다.

관계의 갈등 속에서 우리가 먼저 낮아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먼저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안전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께 도움이 됩니다

  • 은혜를 경험하고도 일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쉽게 마음이 굳어지는 분
  • "왜 나만 항상 손해를 보고 먼저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억울함이 드는 분
  • 개인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상대방을 품거나 용서하기 힘든 분

설교가 비추는 우리의 현실

  • 예배당 안에서는 사랑을 결단하지만, 삶의 작은 이권이나 자존심 앞에서는 금방 옛 사람의 가혹한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 세상의 불확실함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정, 돈, "내가 옳다"는 자기의라는 우상을 완고하게 의지합니다.
  • 먼저 양보하면 내가 비참해지거나 손해를 보고, 내 존재의 권리를 통째로 잃어버릴 것 같은 깊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설교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

  • 성령 충만은 감정적인 뜨거움이나 인간적인 결단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온전한 항복입니다.
  •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우리가 대면해야 할 진짜 질문은 "내가 왜 먼저 굽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나를 위해 먼저 굽히셨는가"입니다.
  •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완벽히 아셨기에, 자기를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먼저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 복음은 우리가 낮아져야 비로소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사랑받았기에 기꺼이 먼저 낮아질 수 있음을 선언합니다.

■ 설교 요약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배를 드리거나 뜨겁게 기도할 때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눈물로 결단합니다. 그러나 막상 일상으로 돌아와 교회 복사기 앞이나 가정에서의 사소한 대화 속에서 갈등을 마주하면 그 마음은 금방 굳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고도 왜 관계 앞에서는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지 깊은 회의감에 빠지곤 합니다. "내가 정말 변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일어납니다. 알면서도 손가락 하나 움직여 먼저 전화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현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악하고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월을 아끼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세상의 두려움과 불확실함에 사로잡힌 인간은 돈이나 인정, 혹은 "내가 옳다"는 자기의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무엇에 지배받느냐에 따라 동일한 상황에서도 감사로 반응하거나 상처로 반응하는 차이가 생겨납니다. 성령 충만은 무언가에 붙들려 요동치는 내면을 주님의 다스림 아래 두는 것입니다. 관계의 실패는 결국 우리 안을 지배하는 성령의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흔히 변화를 위해 뜨거운 감정적 집회나 강력한 개인의 결심, 혹은 율법적인 의무를 대안으로 붙잡습니다. 그러나 감정의 뜨거움은 며칠 만에 식어버리고, 부모님께 잘하겠다는 결심은 부모님의 잔소리 한마디에 무너집니다. "그리스도인이니까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의무감만으로는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지 않고 오히려 종교적인 정죄감과 분노만 자라날 뿐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서 출발한 순종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은 내 힘을 짜내는 성취가 아니라 은혜 앞에 무릎을 꿇는 항복입니다.

본문은 성령 충만의 진정한 열매가 찬송과 감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은 예배당 안의 뜨거움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해 보기 싫은 관계의 현장에서 증명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먼저 굽히면 지는 것 같고 내 권리가 통째로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부당한 폭력을 방치하라는 뜻이 아님에도, 우리는 먼저 사과하는 것을 비참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왜 내가 늘 먼저 굽해야 합니까"라는 거친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내가 왜 굽혀야 하는가"에서 "누가 먼저 굽히셨는가"로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모든 권세가 자기 손에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아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안전과 정체성이 완벽하셨기에 자기를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실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부인할 베드로와 자신을 팔아넘길 유다의 발까지 기꺼이 씻기시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신분과 존귀함을 아셨기에 가장 자유롭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세족식에서 멈추지 않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이어졌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무릎이 그 앞에 꿇어야 마땅한 분이 도리어 죄인인 우리 앞에 먼저 무릎을 꿇으신 사건이 바로 복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바로 이 먼저 굽히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낮추어 사랑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한 사랑을 받았기에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 마음을 굳어지게 만드는 갈등의 자리마다 주님이 이미 와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복사기 앞에도, 부모님과의 차가운 전화 통화 속에도, 직장 동료의 날카로운 한마디 속에도 주님은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유다의 발을 씻기셨던 그 손으로 오늘 우리의 발과 상대방의 발을 동일하게 씻기시며 "내가 먼저 굽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먼저 시작하신 그 압도적인 사랑을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의 굳은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었던 먼저 사과하기와 먼저 전화하기가 복음 안에서 가능해집니다.

복음의 선언 | Gospel Declaration

우리는 굽혀서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하게 사랑받았기에 기꺼이 먼저 굽힐 수 있습니다.

We do not bow down to be loved,
but because we are already perfectly loved in Christ,
we can willingly bow down first.

말씀 붙들고 기도하기

  • 관계 속에서 억울함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 나를 위해 먼저 무릎 꿇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먼저 바라보게 하소서.
  • 내 힘과 결단으로 참으려는 종교적 노력을 내려놓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 온전히 항복하여 주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소서.
  • 이번 한 주간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주님이 먼저 시작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먼저 손 내밀고 인사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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