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8-15, 복음이 나의 실재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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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나의 실재가 되는 방법
누가복음 2:8-15 · 김대성 목사
중요한 소식은 보통 중심에서 시작됩니다. 공식 채널을 타고, 중요한 사람에게 먼저 전해집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장 8–15절에서 하나님의 가장 큰 소식은 성전이 아니라 밤의 들판에서 시작되고, 제사장이 아니라 목자에게 먼저 전해집니다. 이것은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중심으로 올라오면 내가 만나주겠다"가 아니라 "네가 들판에 있을 때도 내가 너에게로 가겠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들판 같고, 밖에 서 있는 느낌이 들며, 혼자 버티는 밤을 지나는 사람에게 복음은 먼저 찾아옵니다.
주의 영광이 목자들을 두루 비출 때 그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거룩 앞에서 사람은 먼저 자기 부족함과 숨김, 죄책감과 불안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죄가 시작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천사의 첫마디는 "무서워하지 말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심장은 11절의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구주가 나셨다"는 사실이 정보로 머물면 마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로 받아들일 때, 그 소식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 되고 현실이 됩니다.
로마가 말하던 평화는 힘으로 만든 질서였고, 죄와 죽음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천사가 선포한 구주는 기분을 달래는 분이 아니라 죄를 담당하고 죽음을 깨뜨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참 평화를 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표적이 왕궁이 아니라 강보와 구유입니다. 하나님의 왕은 남을 희생시켜 올라가는 왕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시는 왕이십니다. 하늘의 천군은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를 노래합니다. 이 평화는 상급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목자들은 복음을 듣고 "가서 보자"로 반응합니다. 복음은 듣고 끝내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께로 걸어가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오늘 적용은 한 가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가 "나를 위하여"가 되게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을 때, 들판 같은 마음에도 구주의 평화가 실제가 됩니다.
구유에서 시작된 낮아지심은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책과 두려움을 짊어지시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십니다. 그래서 이 평화는 상황이 좋아져서 생기는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되었다는 확정에서 흘러나옵니다. 오늘 이렇게 고백하면 됩니다. "주님, 저를 위하여 오신 구주를 받습니다." 들판에서 시작된 복음은 오늘도 가장 낮은 자리로 찾아옵니다. 두려움 대신 기쁨이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