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14, 당신의 '성실함'이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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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성실함'이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다면
방법은 아는데 버틸 힘이 없는 당신에게
우리는 참으로 많은 '방법'을 배우며 삽니다. 직장에서는 업무 매뉴얼을 익히고, 서점에서는 처세술을 읽으며, 교회에서는 승리하는 신앙의 비결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는 것은 늘어가는데, 정작 삶의 현장인 직장이나 가정으로 돌아가면 맥없이 무너집니다. 성경 지식은 박사급인데, 왜 현실의 파도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한 것일까요?
우리의 문제는 싸우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싸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일 예배 때는 무언가 깨달은 것 같지만, 월요일 아침이 되면 다시 공허함과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여기서 정직한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합니다. "지금 내 존재를 실제로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흔들릴 때 나도 함께 흔들린다면, 당신은 지금 그것과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래 맺고 있는 '가짜 생명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과 생명줄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불안'과 연합되어 밤새 걱정을 동력 삼아 움직입니다. 또 어떤 이는 '타인의 인정'과 연합되어 칭찬 한 마디에 천국을, 비난 한 마디에 지옥을 오갑니다. 성과, 관계, 통제욕 같은 것들이 우리 삶의 실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짜 생명들은 우리를 살리는 척하다가 결국 더 깊은 목마름으로 몰아넣습니다. "더 잘해야 해", "더 완벽해야 해"라는 요구는 우리를 영적으로 완전히 고갈시킵니다. 종교적 노력조차 때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자기증명'의 도구가 되어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혹시 당신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당신의 '열심'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텐트를 들고 당신 곁으로 오신 이유
성탄의 진짜 소식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이라는 초라한 자리에 직접 '텐트를 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훈수 두러 오신 교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불안, 실패, 질병의 자리에 함께 텐트를 치고 연합하러 오신 것입니다. 복음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기술이 아니라, 연합의 대상이 '나의 성과'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완전히 바뀌는 사건입니다.
노력이 아닌 '출생'으로 시작되는 자유
가장 놀라운 전환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나의 결심이나 혈통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건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모에 의해 세상에 나옴으로써 자녀라는 신분을 거저 얻습니다. 태어난 후에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기 때문에 자녀인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정체성은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서 났는가"로 재정의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실패는 더 이상 당신을 정의하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 거하시는 말씀이 당신의 실제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연합의 비밀을 놓치면, 우리는 평생 '종교적 피로감'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번 예배에서는 우리 삶에 텐트를 치신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역전시키는지, 그 현장의 이야기를 더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