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1:10, 죽은 자를 살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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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나눔 교재
죽은 자를 살리는 방법
에베소서 2:1–10
오늘의 본문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1
"But God, being rich in mercy, because of the great love with which he loved us, even when we were dead in our trespasses, made us alive together with Christ."
Ephesians 2:4–5, ESV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서 2:10
말씀 속으로
우리는 왜 자꾸 같은 자리를 맴돌까요
이번 주도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보려고 하고, 더 많이 기도해 보려고 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결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왜 우리는 자꾸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을까요?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문제를 잘못 본 것일까요?
우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조금 고장났을 뿐이야. 조금 더 노력하면 나아질 거야.' 그래서 더 나은 처방을 찾습니다. 더 깊은 경건, 더 강한 결단, 더 좋은 습관. 그런데 처방보다 먼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진단입니다. 진단이 틀리면 아무리 좋은 처방도 소용없습니다. 암 환자에게 비타민을 처방하면, 환자가 성실하게 먹어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비타민의 품질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진단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의 상태를 어떻게 진단합니까
성경은 우리의 상태를 한 단어로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 에베소서 2:1
조금 아픈 것이 아닙니다. 방향을 잃은 정도가 아닙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죽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코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방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생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방전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노력이 닿지 못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노력은 살아있는 사람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성실하게 헌신하고, 더 깊이 회개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를 살린 것이 아닙니다. 살아난 다음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절망이 가장 깊은 그 자리에서, 성경은 두 단어를 터뜨립니다.
"But God…"
Ephesians 2:4, ESV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먼저 오셨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죽어 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8
은혜는 우리의 노력에 대한 보너스가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보충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입니다. 내 헌신의 깊이가 구원의 근거가 아닙니다. 내 회개의 눈물이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살아난 우리는 이제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 에베소서 2:10
여기서 '만드신 바'는 헬라어로 포이에마(Poiēma)입니다. 이 단어가 바로 영어 단어 Poem, 시(詩)의 어원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 아닙니다. 시인이 온 마음을 쏟아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시처럼,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빚으셨다는 것입니다.
시는 고쳐 쓰지 않습니다. 공장 제품처럼 불량품이 나오면 버리고 다시 찍지 않습니다. 시인은 그 한 편의 시에 자신의 전부를 담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생명을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를 재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쓰고 계신 한 편의 시입니다. 그 시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습니다.
걸작품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까? 한 편의 시가 스스로 의미 있다고 소리칩니까? 포이에마는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증명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됩니다
"더 잘해야 한다." "더 증명해야 한다." "더 열심히 해야 인정받는다."
우리가 그 무게를 얼마나 오래 지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짐은 애초에 우리가 져야 할 짐이 아니었다고.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나은 처방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살리신 그분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나눔 질문
Q1 · 마음 열기
요즘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느끼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일, 가정, 관계, 신앙 중에서 특히 부담이 되는 부분을 나눠주십시오.
Q2 · 복음 발견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더 기도하면, 더 헌신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어왔던 적이 있습니까? 기도를 못 한 날 하나님이 실망하실 것 같았던 순간, 헌신이 줄어들면 하나님이 멀어질 것 같았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주십시오. 그때 내 마음속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Q3 · 은혜 나눔
"But God" —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오셨다는 사실이 오늘 내 삶의 어느 부분에 가장 필요한 말씀이었습니까? 내가 스스로 고치려고 오래 애썼던 영역이 있다면 나눠주십시오.
Q4 · 정체성 나눔
나는 요즘 '증명하려는 존재'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사랑받는 존재'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포이에마, 한 편의 시로 빚으셨다는 사실이 지금 내 삶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나눠주십시오.
Q5 · 삶의 적용
이번 주, 내가 또다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할 때 이 고백을 떠올려봅시다.
"나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살아난 자다.
나는 그분의 포이에마다."
이 고백이 가장 필요한 구체적인 상황 한 가지를 나눠주시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