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28–44, 평화의 길을 잃어버린 자들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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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음 안에서
(Once More, Into the Gospel)
1. 당신이 보지 못한 눈물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아프면 감기겠지, 힘들면 좀 쉬면 낫겠지. 내 안에 결론이 먼저 자리 잡으면, 다른 가능성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답이 이미 있을 때, 하나님이 실제로 하고 계신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종려주일, 군중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린 왕은 로마를 몰아낼 해방자였습니다. 내가 설계한 모양에 예수님을 맞추고 있으면, 실제로 오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환호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2. [본문 발견]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누가복음 19:42)
- Q.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며 우신 이유는 무엇이며, 군중이 생각한 '평화'와 예수님이 주시려는 '평화'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3. [복음] 한 줄 요약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4. [복음 묵상]
예수님은 그날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환호가 저주로 바뀔 것을, 이 성이 무너질 것을 아셨음에도 예루살렘으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그들이 거절한 왕이, 그들을 위해 죽으러 들어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눈이 멀어 있는 동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시며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5. 두 세계의 간격
| 구분 | 군중의 시선 | 예수님의 마음 |
|---|---|---|
| 평화 | 정치적 해방, 로마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과의 화목, 죄로부터의 자유 |
| 반응 | 호산나 찬송 (자신의 유익) | 우심 (긍휼과 아픔) |
6. 나눔 질문
이번 한 주 동안, 어떤 상황에 대해 "이럴 거야"라고 미리 결론을 내렸다가 나중에 달라졌던 경험이 있나요?
눅 19:41-44을 읽고, 군중이 환호하는 중에도 예수님이 "알지 못했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먼저 챙기고 계셨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보지 못하는 나를 먼저 보고 계신 주님께 드리는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고 함께 나누어 봅시다.
[축복 선언]
주님이 흘리신 눈물이 우리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신실하게 일하시는 그 사랑을 신뢰하며,
이번 한 주도 평화의 왕과 함께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