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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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의 무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어느 목사님의 은퇴식 문구에 적힌 **'일체감사(一切感謝)'**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나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그 고백이 참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섰을 때, 정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혹시 내 욕심으로 세상 성공을 쫒아 살았으면서, 결과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은혜'라고 포장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고백을 하는 바울의 상황입니다. 그는 지금 화려한 왕궁에 있지도, 교단의 총회장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거나, 매를 맞거나, 세상의 미움을 받는 처지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래 로마 시민권자요, 당대 최고의 학벌을 가진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그 화려한 세상의 스펙들을 **'배설물(쓰레기)'**처럼 여긴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조건들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만이 진짜 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돈 많이 벌게 해주신 은혜", "자식 잘되게 해주신 은혜"를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진짜 은혜는 요셉처럼 노예로 팔려가도, 감옥에 갇혀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임마누엘)" 그 자체입니다. 환경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내가 환경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설명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직함이나 통장의 잔고가 여러분의 정체성입니까? 이제는 당당하게 선포하십시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존귀한 자다."
이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만들어주신 진짜 '나'입니다. 이번 한 주, 세상이 주는 조건에 기죽거나 교만하지 마십시오. 오직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빚어가시는 그 은혜만을 의지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당당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소그룹 나눔 질문]
Ice Breaking (마음 열기)
Q1. 명함 없는 자기소개 우리는 흔히 자신을 소개할 때 직업, 나이, 사는 곳, 출신 학교 등을 말합니다. 만약 이 모든 '세상적인 조건(라벨)'을 떼어내고 나를 소개한다면, 나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 "저는 꽃을 보면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따뜻한 밥을 지을 때 기쁜 사람입니다" 등)
Sharing (깊은 나눔)
Q2. 내가 생각하는 은혜의 정의 설교에서 "세상적으로 성공했을 때만 은혜라고 말하는 것은 반쪽짜리 고백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어떤 상황에서 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말을 사용하나요? 반대로 실패하거나 감옥에 갇힌 바울과 같은 상황에서도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나의 '은혜관'을 점검해 봅시다.
Q3. 내가 버리지 못한 '배설물'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과거의 화려한 스펙(가문, 학벌, 율법)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이것만큼은 포기 못 해', '이것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붙들고 있는 세상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Q4. 하나님과 함께 만드는 나 "요셉은 노예였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비록 요셉의 감옥처럼 답답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정체성)**을 믿고 이번 주에 내가 당당하게 도전해보고 싶은 태도나 행동은 무엇입니까? (예: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 보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기, 불평 대신 감사 선포하기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