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은혜가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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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사라진 기쁨을 찾는 수사 보고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목사가 아닌, 한 명의 ‘수사관’이 되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때는 예배만 드려도 가슴이 벅찼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기쁨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배는 습관이 되고, 봉사는 짐이 되고, 기도는 숙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속은 방전된 스마트폰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태, 혹시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안타깝게 외쳤습니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갈 4:15)
오늘 이 ‘기쁨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합니다. 그 범인은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가 아닌 ‘깐깐한 채점관’으로 보게 만듭니다. “내가 기도를 충분히 했나?”, “내가 헌신을 이만큼 했으니 복을 주시겠지?” 끊임없이 나의 행위를 점검하게 하고, 결국 신앙의 초점을 예수님이 아닌 ‘나의 노력’에 맞추게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노예는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지만, 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들입니다. 노력해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께 점수 따기 위한 ‘시험 시간’이 아닙니다. 이미 쏟아지는 햇살(은혜)을 누리기 위해 마음의 창문을 여는 ‘환기 시간’입니다. 창문을 열어야 빛이 들어오듯,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이미 주신 은혜를 내 영혼 깊숙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수사를 종결합니다.
범인인 율법주의를 체포하고, 여러분의 신분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은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더 잘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이미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 사실을 믿고 선포할 때, 집 나갔던 기쁨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의무가 아닌 감격으로 사는 아들의 삶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소그룹 나눔 질문]
???? Ice Breaking (마음 열기)
Q1. 내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
지갑, 휴대폰, 혹은 어릴 적 소중한 장난감 등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극적으로 되찾았거나, 혹은 영영 찾지 못해 애태웠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심정을 가볍게 나눠봅시다.
???? Sharing (깊은 나눔)
Q2. 내 신앙의 배터리 상태는?
설교에서 기쁨이 사라진 상태를 **'방전된 스마트폰'**에 비유했습니다. (겉은 멀쩡하나 눌러도 반응이 없고, 예배가 짐처럼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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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의 영적 배터리 상태는 몇 % 정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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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쁨"보다는 "의무감"이나 "피로감"을 더 많이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Q3. 범인 지목하기: 나를 힘들게 하는 '충분히'
"충분히 회개하지 않아서 그래", "기도가 충분하지 않아"라는 생각은 우리를 율법주의의 노예로 만듭니다.
혹시 나를 짓누르고 있는 나만의 **"~해야 한다(Must)"**는 무엇입니까? (예: 새벽기도를 안 하면 큰일 난다, 봉사를 안 하면 벌 받는다 등)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닌 '채점관'으로 오해하게 만든 내 안의 율법적인 생각을 찾아봅시다.
Q4. 창문 열기 연습
"예배와 기도는 은혜를 얻어내려는 노동이 아니라, 이미 비추는 햇살을 받아들이기 위해 창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숙제하듯 해치우는 신앙생활을 멈추고, **'아들의 신분'을 누리기 위해 내가 열어야 할 '창문(기도/찬양/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예: "복 주세요"라고 매달리는 기도 대신, 5분 동안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감사 고백하기 등)





